강동우.백혜경 성의학박사
537호 20170625
‘오래된 양말일수록 환영합니다’.
필자의 진료실을 찾은 30대 초반의 남성 K씨가 어렵사리 보여 준 휴대전화의 메시지다. 그는 아내와 성생활은 피하고 남몰래 ‘오래된 양말’에 집착했다. “아내와 도저히 흥분이 안 됩니다. 오로지 양말과 속옷이….” 아내가 매력이 없거나 성생활을 기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K씨는 특이하게도 불결하기 짝이 없는 악취 나는 양말 냄새를 맡으며 자위에 심취하는데, 전형적인 페티시즘(fetishism)이다.
흔히 변태라고 불리는 성도착증. 페티시즘 이외에도 관음증·노출증·가학-피학증·소아기호증 등이 있다. “남한테 특별히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치료를 받아야 하죠?” 어찌 보면 특이한 취향 정도로 여기지만 사실은 치료대상이다. 대부분의 성도착증이 가볍게 시작해 점점 악화되다가 성중독과 성범죄로 빠질 확률이 높고 피해자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당사자의 삶뿐 아니라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가 파멸에 이르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기 쉽다. 일부는 영원히 이성교제나 결혼을 멀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스스로 치료의지가 빈약하다 보니 특히 성범죄나 성중독까지 빠져서 병원을 찾는다. 더 문제는 치료자나 사법기관조차 흔히 충동의 억제나 교화에만 신경 쓴다. 그러나 그런 억제의 방식으로 치료되기 힘들다. “어린 시절 늘 혼자였고 텅빈 집에서 느끼는 공허감이 전부였죠. 엄마는 저를 따뜻하게 안아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치료 도중 분석에 따라 K씨가 스스로 한 표현이다. 성장 과정에 소중한 대상과의 친밀감과 스킨십이 바로 정서적 성장의 밑거름인데 K씨는 이에 만성적인 결핍이 있었다.
대부분 성도착 환자들은 적절한 대상과 친밀관계를 형성할 정서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관계형성을 못하다 보니 실제 이성과 성관계에서도 발기부전 등 성기능의 문제로 성생활을 더 피하기도 한다. 해 봐도 안 되니 자신만의 특이한 방식에 집착하는 등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성도착증의 제대로 된 치료는 앞서 언급한 충동의 억제나 교화가 아니다. 환자에게 뿌리깊게 박힌 삐뚤어진 성 관념, 그 배경이 되는 성적 트라우마와 결핍된 친밀관계 그리고 두려움을 개선시켜야 한다.
이성과 성생활에서 정상적인 성반응이 나오도록 성기능을 치료해야 할 때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소중한 대상과 정서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갖도록 재활치료가 가장 올바른 방향인데 이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성도착에 빠진 K씨가 필자의 치료로 정상적인 삶을 찾으면서 했던 한마디는 ‘자신의 성장’이었다.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한국인 의사 최초로 미국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강 박사는 2005년 국제학회에서 발간한 여성 성의학 교과서의 공동집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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