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고 사는 여자?
“연애할 땐 뜨거웠어. 손끝만 닿아도 흥분되고… 의무감이 아니라 정말 좋아서 관계했고 꽤 만족스러웠지.”
자신이 ‘섹스리스(Sexlessㆍ성관계를 갖지 않거나 횟수가 매우 적은 사람)라며 상담을 자처한 친구의 말이다. 어느 순간 부부생활이 뜸해지더니 출산 후에는 ‘팍’ 줄어 거의 안 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남편이 나한테 손대면 너무너무 싫은 거 있지. 그래서 애들 핑계를 대보고, 피곤하니까 내일 하자고 하고. 남편도 처음엔 짜증을 부렸지. ‘밥만 먹고 못 산다’는 영화도 있다면서 나더러 ‘밥만 먹고 사는 여자’라고 투덜거려. 요즘엔 자기도 무안한지 말도 안 꺼내. 근데 이러다 혹시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면 어쩌지?”
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이런 여성이 적지 않다. 성욕이 줄고 성관계에 별 흥미가 없는 성욕저하증은 여성에게 가장 흔한 성기능 장애인데 부부 섹스리스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다.
여성의 성욕저하증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권태기이거나 성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진 경우도 있다. 특히 임신ㆍ출산 후 신체변화나 성기손상,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잘 생긴다. 자녀 양육에 대한 신체적ㆍ정신적 부담도 이유가 된다. 맞벌이라면 상황이 더욱 안 좋다.
갱년기 호르몬 감퇴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 우울증 등 각종 심신 질환, 배우자의 외도나 고부 갈등, 경제적인 문제도 성욕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갈등이 깊어지면 ‘이런 대접을 받을 바에야 더 이상 상대 않겠다’는 식의 보복성 섹스리스도 나타난다.
원래 성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분비 장애, 성행위 통증, 불감증 등으로 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거나 통증을 느끼다 보면 성행위가 싫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근본 원인인 성기능장애를 고쳐야 성욕이 회복될 수 있다.
“성생활만 빼면 아무 문제도 없어. 친구 같은 부부 사이가 뭐가 문제냐?”
상대의 불평에 마지못해 병원을 찾은 배우자는 이런 항변도 자주 한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할 뿐, 성생활에 금이 가면 부부의 인간관계도 곪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남편이 ‘난 알아서 해결하니 상관없다’는 식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섹스리스의 피해를 보게 된다.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면 아내는 자녀들과 더욱 밀착되고 이로 인해 남편은 가정에서 고립되기도 한다. 안 하고 살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언젠가는 심리적 거리감에다 공허감에 빠지게 되고 몸이 녹슬면서 더욱 섹스리스를 재촉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성생활을 활발히 하는 부부가 남녀 모두 더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보고가 많다.
부부에게 ‘사랑’과 ‘성’은 양쪽 날개와 같아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다. 섹스리스에 빠진 당사자들이 무턱대고 배우자의 부정(不貞)을 의심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섹스리스 상황과 그 원인을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왜 우리 부부는 이 같은 섹스리스 상태에 빠졌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