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7년 3월 25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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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늦게까지 청소하고 빨래하고… 괜히 애들 방에 가서 나한테 오지도 않고….”

부부관계를 피하는 아내에게 불평하던 B씨.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의외다.

“당신은 내가 왜 잠자리에서 소리 지르는지 아직도 모르지.”

“그거야 좋아서 그런 거 아냐.”

B씨의 아내는 성교를 할 때 신음소리를 낼 때가 많았다. 부부행위 때 부인이 통증을 심하게 느낀다는 진단이 나오자 B씨는 깜짝 놀랐다. 잠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 초에나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행위에 익숙해진 후에도 통증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항상 좋아서 신음소리를 낸다고 여겼던 것이다. 신음소리를 낼 때 잔뜩 찌푸린 아내의 표정을 보고 흥이 싹 가시기도 했는데 통증 때문이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좋아서 소리를 내는지, 아파서 소리를 내는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 풋내기인 20대뿐만 아니라 결혼해 애를 낳은 40대도 헷갈린다. 사실 아내의 통증은 평생을 두고 함께 염려해야 할 문제다.

여성의 부부행위 통증은 생리 주기에 따라 성호르몬이 달라지면서 생길 수 있다. 통증의 절반은 질 입구 염증(전정염) 때문이다. 살짝 닿기만 해도 쓰라리고 아프니 부부행위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전정염은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생긴다. 필자는 미국 보스턴 성의학연구소에 연수 갔을 때 생리 직전이나 직후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바닥까지 내려가면서 호르몬 불균형이 생기고 이로 인해 통증이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출산 때의 손상이나 출산 후 호르몬 변화로 질벽이 아주 연약해질 경우에도 통증을 느낀다. 특히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때 증가하는 ‘프로락틴’이라는 유즙분비 호르몬이 성호르몬을 억제해 여성의 질 내부가 성행위를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폐경기 여성도 통증을 자주 겪는다. 난소 기능이 퇴화해 호르몬 생산량이 줄고 질 내부에 위축성 변화가 오고 분비 기능마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 중 부부행위 통증은 신혼 초와 생리 전후, 출산 후와 모유 수유기, 폐경기에 자주 발생한다. 적어도 이 시기에는 아내가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치료하도록 도와야 한다.

통증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내버려두면 성욕을 떨어뜨리고 섹스 없는 부부를 초래할 수 있다. 아내가 통증 때문에 부부관계를 피하는 것인데,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착각한다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아내의 표정이나 신음소리 하나도 잘 읽어낼 줄 아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2007.03.25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한국인 의사 최초로 미국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강 박사는 2005년 국제학회에서 발간한 여성 성의학 교과서의 공동집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