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link”>중앙일보 원문

주인공 알렉산더는 더없이 아름다운 아내와 살지만 사실 노예나 다름없다. 하루 종일 무서운 아내로부터 무전기로 지령을 받으며 농장 일만 하던 알렉산더. 그는 아내가 사고로 죽자 해방감을 만끽하며 극도의 게으름뱅이가 된다.

섹스리스 부부 중엔 알렉산더 같은 남편이 꽤 있다. 한마디로 ‘무서운 아내-기죽은 남편’ 커플이다. 이들은 성기능 장애나 다른 질병 없이 몸은 멀쩡한데 섹스리스에 빠져 있다.

J씨도 늘 침묵만 지키는 남편이다. 일일이 챙겨주고 간섭하는 아내는 돌변하면 소리부터 지른다. 이성을 잃으면 시시콜콜한 불만까지 보태 맹폭을 퍼붓는 마귀 같은 아내 앞에 J씨는 말문을 닫았고 성욕은 달아난 지 오래됐다.

“대체 뭐가 불만인지 말 좀 해봐. 옆집 ○○네 아빠처럼 왜 못 해?”

이뿐만이 아니다. 좋은 아내는 남편 흉볼 때 끼지 않는다는데, J씨의 아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남들보다 앞장서 남편 흉을 본다. “남편에게 화를 내 봤자 소 귀에 경 읽기”라면서도 “그 화상만 보면 오장육부가 뒤집어진다”는 J씨의 아내.

하지만 J씨 아내의 거친 언행은 남편을 ‘수동공격성’의 악순환으로 몰아갈 뿐 도움이 안 된다. 일방적인 공세에 주눅 든 남편은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 채 소극적·우회적 방법으로 아내를 골탕 먹인다. 파업보다 무서운 게 태업이라고, 성생활을 피하니 아내의 속은 더 타 들어가는 식이다.

J씨 같은 남편들이 이런 방식을 쓰는 데는 뿌리 깊은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워낙 엄하고 강한 부모 밑에서 자란 J씨는 부모로부터 감정을 이해받은 적이 없다. 좋고 나쁜 감정을 용인받기는커녕 부모의 시각에서 차단되어 왔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다른 이들과 정서를 교류하거나 친밀감을 형성할 줄 모른다. 과거의 부모에 대한 분노 감정이 아내를 향한 감정과 혼재돼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회피하게 된다.

물론 수동성의 남편과 공격성의 아내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과 다를 바 없다. 대체로 부부 쌍방의 문제로 설상가상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섹스리스에 정력 음식, 발기나 성욕을 돋운다는 약을 대령해 봤자 아무 효과가 없다. 아내는 분노 표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해주고, 남편은 수동성을 교정하고 적극적인 남성 성심리를 회복하게 해줄 성치료가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부문제를 전적으로 남편의 잘못으로 몰아세울 때가 많다. 드라마에서 ‘나쁜 남편-착한 아내’로 편중된 설정도 좀 더 바뀔 필요가 있다. 만약 남편이 성생활에서 태업으로 일관하여 아내의 분노를 부추긴다면 외도나 건강문제만 의심할 게 아니라 부부의 수동성과 공격성을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짚어 보길 바란다. 남편이 이불을 걷어차면 조용히 덮어주는지, 곱게 덮고 자는 남편의 이불마저 홧김에 뺏어 오는 아내는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한국인 의사 최초로 미국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강 박사는 2005년 국제학회에서 발간한 여성 성의학 교과서의 공동집필자다.